호주 역사에서 가장 황당하면서도 실화라고 믿기 힘든 사건 중 하나가 바로 **1932년의 '에뮤 전쟁(The Great Emu War)'**입니다. 군대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새(에뮤)에게 패배했다는 점 때문에 오늘날 전 세계적인 '밈(Meme)'이 되기도 했죠.
1. 발단: 2만 마리 에뮤의 습격
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정부는 참전 용사들에게 서호주(Western Australia)의 땅을 나누어 주며 밀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.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.
- 에뮤의 이동: 산란기를 맞아 이동하던 약 20,000마리의 에뮤가 잘 가꾸어진 밀밭을 발견한 것입니다.
- 초토화: 에뮤들은 울타리를 부수고 밀을 먹어치웠을 뿐만 아니라, 부서진 울타리 사이로 토끼들까지 들어와 농작물을 완전히 망쳐놓았습니다. 대공황 시기였기에 농민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비극이었습니다.
2. 전개: 군대의 투입과 루이스 경기관총
농민들은 국방부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, 정부는 이를 '실전 훈련' 겸 홍보 수단으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.
- 병력: 메러디스(Meredith) 소령과 병사 2명.
- 무기: 루이스(Lewis) 경기관총 2정과 총알 10,000발.
- 작전: 압도적인 화력으로 에뮤 무리를 소탕한다.
3. 전쟁의 경과: "에뮤는 생각보다 똑똑했다"
군대는 쉽게 승리할 줄 알았으나, 에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.
- 게릴라 전술: 에뮤들은 큰 무리로 뭉쳐있다가도 총소리만 나면 수십 개의 작은 그룹으로 흩어져 도망갔습니다. 심지어 무리 중 한 마리가 고개를 높이 들고 보초를 서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.
- 방탄급 맷집: 에뮤는 총알을 몇 발 맞고도 시속 $50km로 계속 달릴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가졌습니다. 소령은 나중에 **"에뮤가 총기를 다룰 줄 알았다면 세계 어떤 군대와도 맞설 수 있었을 것"**이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.
- 트럭 작전 실패: 도망가는 에뮤를 잡으려고 트럭에 기관총을 설치해 쫓아갔지만, 지형이 너무 험해 조준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.
4. 결과: 인간의 패배와 종전
약 한 달간의 전투 끝에 군대가 사용한 총알은 수천 발이었으나, 사살된 에뮤는 수백 마리에 불과했습니다.
- 철수: 언론의 비난과 비효율성 문제로 결국 군대는 철수했습니다.
- 최종 승자: 에뮤 무리는 여전히 농장을 누볐고, 호주 의회에서 이 사건은 "인간의 패배"로 기록되었습니다. (결국 이후에 울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습니다.)
💡 왜 이 사건이 지금까지 유명할까?
- 호주식 유머: 호주인들은 이 황당한 역사를 숨기기보다 웃음 소재로 삼습니다. "우리는 새랑 싸워도 진다"는 자조 섞인 농담은 호주인 특유의 여유를 보여줍니다.
- 동물권의 재조명: 당시에는 '유해 조수'로 취급받았지만, 지금 에뮤는 호주 국장에 캥거루와 함께 당당히 새겨진 국가의 상징입니다.